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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Alexandra Von Stosch'




Alexandra Von Stosch




건설 회사 ‘아트프로젝트’는 문화 예술이 중심인 사회를 건축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리고 이곳의 헤드 큐레이터이자 고문인 알렉산드라 폰 슈토슈Alexandra Von Stosch는 이곳에서

 공공 예술을 통해 도시를 재생하고 있다. 그는 예술이 도시를 구원하리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이 도시에 색채를 더하며 변화를 모색한다. 





현재 건설 회사 아트프로젝트Artprojekt에서 아트&컬처 분야를 책임지는

 헤드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아트프로젝트를 소개해달라. 


아트프로젝트는 30년 전 토마스 휠첼Thomas Hölzel이 설립한 건설 회사다. 현재는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 를 진행하고 있는데, 지속 가능한 주택 및 상업 건축 프로젝트를 위한 아트프로젝트 부동산 중개,

 그리고 호텔 및 레 스토랑 프로젝트인 아트프로젝트 호스피털리티Hospitality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회사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모든 프로젝트는 예술가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을 위해 이루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삶과 지역사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개발하는 것이다.


 아트프로젝트는 개인 사업가로는 최초로 도심 내 모든 건설 프로젝트의 3% 를 예술가만을 위해 할애함으로써

 그들이 도심 중심부에서 밀려나는 것을 막고자 한다. 베를린은 무서운 속도로 발 전하고 있다. 잠시만 방심해도 베를린 곳곳엔 돈을

 묻어두기 위한 투자 목적의 집들이 생길 테고, 예술가는 물론 그 누구도 살지 않는 죽은 도시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선 개인 투자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국가와 도시만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두는 공동체의 일원이기에 개인 투자자도 공동체에 책임감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우리도 할 수 있다. 심지어 이러한 멋진 일들을 통해 돈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개인 투자자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그 안에서 난 아트&컬처 분야의 헤드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예술가를 후원하기 위한 기금 마련,

 예술가와 함 께 진행하는 건설 공사, 프로젝트를 위한 혁신적이고 통섭적인 문화 플랫폼 운영 등을 도맡아 진행 중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베를린이라는 도시에 꼭 필요한 일이자 오직 베를린에서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다른 도시에서 실현 할 방법도 고민 중이다.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예술가들을 통해 찾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아트프로젝트의 슬로건이

 ‘쿤스트 암 바우Kunst am Bau(건물의 예술)’인 이유도 이와 연관이 있는 건가? 


우리는 건물이 지어지는 시점부터 모든 과정을 예술가와 함께한다. 건물을 완성하기도 전에 예술가들이

 참여해 함께 지어나가는 것이다. 이미 지어진 건물에 예술적 요소를 더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차이다. 예술가와 함께, 예술가를 위해,

 그리고 예술가와 함께 사는 것. 이 모든 게 조화를 이룰 때 비로 소 건물 그 자체가 예술이 된다.

 예술가들이 지닌 한계는 우리와 다르다. 어쩌면 한계를 모르는 사람들이라고도 표현 할 수 있겠다. 그렇지 않나?

 그들은 우리에게 예술을 통해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술을 통해서 는 모든 게 가능하지만,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잃게 된다면 우리의 존재 역시 지속될 수 없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예술가들을 도시 속에 품고 있어야만 한다.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알렉산드라 폰 슈토슈의 

사무실이 나타난다. 내부에는 전 세계 예술가의 작품이 걸려 있다.






1. 오래된 건물 내부를 간단히 리모델링해 공간마다 쓰심새에 맞게 꾸몄다.

역시나 예술 작품이 함께한다.



2. 예술 작품은 그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다양한 설치 작품도 볼 수 있다.





베를린에서 다양한 예술 활동을 전개하는 동시에 건축 프로젝트 그룹까지 이끌고 있다. 프랑스 파리 소 르본 대학교에서

 수학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도시가 아닌 베를린에서 예술가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베를린이라는 도시에 존재하는 다양한 틈새가 흥미로웠다. 그만큼 할 수 있는 것이 많았고, 자유로운 공 간 또한 넘쳐났다.

 이를 깨달았을 때부터 나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단순히 무언가를 건설하고 함 께 살아가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년 전부터 바우하우스 아카이브Bauhaus Archive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내게 바우하우스는 하나의 정신이다. 많은 이가 숭배하는 바우 하우스의 건축물 같은 건

 내게 그다지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 안에 깃든 그 무언가, 분야와 분 야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동시에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 지 생각하게 만드는 통섭적 사고다.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나는 대학에서 10년째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데, 내 강의를 듣는 학생 중 한국 인이 있었다.

 하루는 그와 함께 내셔널 갤러리를 방문해 모네의 작품을 감상하는데, 평소 말수가 적던

 그가 모네의 그 림 앞에 멈춰 서더니 “여기에 좀 있어야겠다”라고 하는 거다.


 그리고 다음 수업 때 만난 그는 드뷔시의 인상파 음악에 대해 훌륭한 내용을 발표했다.

 인상파 화가인 모네의 그림을 통해 인상파 음악가인 드뷔시의 음악을 이해한 거다. 그 가 모네의 그림 앞에 서 있었던 20분 동안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법과 분야 간 경계를 허물고 장르 간 융합이 무엇인 지에 배우게 됐다는 사실을 지켜보는 건 아주 멋진 일이었다.

 예술엔 언제나 모든 감각이 함께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 은 계기이기도 했다. 하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바우하우스의 정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건축과 예술 둘 중 어느 한 가지 를 빼놓고선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자연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모든 것은 함 께 가야 한다. 그 어느 것도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아트프로젝트가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 른다. 생각만 하던 것을 실현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고심 끝에 내뱉는 단어와 문장, 그 모든 것에서 베를린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당신이 베를린에서 진행 한 프로젝트 중 가장 베를린다운 색채로 완성한 것을 소개한다면?


2002년 파리, 뉴욕,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 다른 무엇보다 이 도시의 개방적인 모습 과 다양성에 매료됐다.

 다른 대도시와 달리 아무것도 완성되어 있지 않은, 여전히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무궁무 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친구들과 함께 미술·무용·연극·음악 분야 예술가들을 위한 후원 재단을 설립했는데, 이를 통해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창의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고, 적극적인 멘토들과 함께 예술가 들을 지원할 수 있었다. 또 빌라 오로라&토마스만

 하우스 협회Villa Aurora & Thomas Mann House e.V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로스앤젤레스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위해 베를린

 예술가들을 선발했는데, 이를 계기로 미국 서부 해안 지역과 베를린 사이의 교류가 활성화되기도 했다. 또 바우하우스 아카이브를 위한

 여러 영역을 아우르는 미래의 플랫폼으로서, 더 나아가 오는 2019년 바우하우스의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바우하우스 카운실Bauhaus Council을 설립하기도 했다. 






빌라 오로라&토마스 만 하우스 협회 프로그램과 같은 레지던스 프로그램 등 후대의 예술가를

 위해 다양하고 폭넓은 지원을 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이러한 지원을 받게 될 예술가들이

 만족시켜주었으면 하는 조건 이 있는지 듣고 싶다.


우리는 젊은 예술가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예술가가 공존하기를 바란다.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른 예술가들과

 함께하며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건 신진 예술가들에게도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임대료 면에서 수입이 높은 유명

 예술가들은 신진 예술가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이 그저 자신의 작업 안에서만

 안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지 주민과 만나고, 함께 여는 행사에 참여하고,

 전시 도 개최하면서 광장과 같은 활기를 되찾을 수 있어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다양한 연령대의 예술가가 공존하는 것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러한 부분 이 젊은 예술가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나?


물론이다. 여기엔 멘토링에 대한 아이디어가 깔려 있다. 내가 예술 분야에 종사한 지도 벌써 25년째다. 도쿄에서 태어나 프랑스와

 미국에 오랜 시간 머무르며 다양한 분야의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1970년대, 아무도 앤디 워홀을 주목하지 않던 시절에 처음으로

 그에 대한 책을 쓴 라이너 크로네Reiner Krone 박사 밑에서 수학하며 뉴욕의 국제 큐레이팅 연구센터에서

 루이즈 브루주아Louise Bourgeois, 제프 쿤스Jeff  Koons , 로이 릭턴스타인Roy Lichtenstein, 에드 러샤 Ed Ruscha 같은 위대한 예술가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한 시간을 통해 예술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영 향을 주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하다못해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작은 그림조차도 말이다. 또 저급 예술이 인간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

 훌륭한 예술 작품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이를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 얼 마나 다양한지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정 수준의 반열에 오른 예술가들과 공존하는 것이 중요하 다고 한 이유도 바로 이 경험에서 비롯했다.  



어린 예술 학도로서의 시간을 거쳐 다양한 학생을 가르치고, 프로젝트 그룹을 이끌기까지 수많은 예술 가를 만났을 텐데,

 오늘날 젊은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예술가로서 누구보다 실험적이고 진취적으로

 활약한 당신이 봐온 젊은 예술가들은 무엇에 가장 목말라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이가 많든 적든 모든 예술가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치기 위한 자유로운 공간을 필요로 한다.

 이 공간 의 조건엔 저렴한 임대료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가능성 또한 포함돼 있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여줄 기회를

 가질 수 있는지의 여부도 매우 중요하다. 베를린에 위치한 다양한 갤러리는 이에 큰 도움이 되지만, 중소 규모의 갤러리는 도심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해 있다. 예술가들 스스로 위기에 맞서고 있긴 하나 한계에 부딪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아트프로젝트는 예술가들이 각자 가능성을 다시 찾아낼 수 있도록 아틀리에와 멘토링 프로그램,

 레지던스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이들을 지원하려는 것이다. 



당신에게 예술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무엇이 당신을 예술가들 편에 서게 하는 것인가?

 도시에 예술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줬으면 한다.


나는 예술사를 공부했다. 예술과 함께 자라왔기에 내가 접하는 모든 작품을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는 일찍이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나는 모든 예술을 이해하고 탐구하고 싶었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지진계 같은 역할을 해왔다. 누구보다 먼저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느끼며 이를 자유롭 고 용기 있게 표현해낸다.

 예술가들은 자신에게 닥친 암울한 상황조차도 작품을 통해 묘사한다. 그들만이 가진 척도 를 이용해 삶의 모든 것을 예술 소재로 활용하며

 전혀 다른 차원의 영감을 우리에게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도시가 그 들을 잃게 된다면 미래를 향한 그 어떤 전망도,

 역동성도 없는 내리막길만 존재할 뿐이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미리 생 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먼저 움직일 수 있도록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줘야 한다.







1.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측에 편안하게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 공간마저 예술 작품처럼 느껴진다.




2. 오래된 건물의 내부를 리모델링한 아트프로젝트 사무실은

전체적으로 따듯한 분위기로 꾸몄다.




3. 사무실 공간 곳곳에 전 세계

예술가들의 예술 서적이 놓여 있다.









베를린은 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어떤 자세로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이 도시에 거주하 고 있는 예술가들을 대하는 베를린의 긍정적인 면과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오직 베를린에만 아틀리에 담당이라는 직책이 존재한다. 이 도시에만 8,000명이 넘는 예술가가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 4,000명의 예술가가 아틀리에를 구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예술가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우리는 임대료가 가장 비싼 지역임에도 예술가들이 베 를린 중심부에 머물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한다. 앞서 말했듯 예술가들이 존재하지 않는 도시는

 활기를 잃을 게 뻔하다. 이에 우리는 아틀리에 담당 공무원, 지자체와 긴밀히 협력해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창의적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예술 시장 역시 베를린이 당면한 문제 중 하나인데, 베를린에서 생산된 작품이 오히려 외국에서 더 많이 팔려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아트 바젤 Art Basel’, 런던, 마이애미 같은 곳에서 말이다. 점점 더 많은 컬렉터가 베를린으 로 모여들고 있긴 하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국제 아트 페어인 ‘아트 쾰른 Art Cologne 2017’에선 베를린 출신 예술가 들의 작품이 매진된 적도 있고, 이것이 ‘아트 베를린’ 설립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예술 시장으로서 베를린은 아직 개 발도상국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런던이나 뉴욕에 비해서도 많이 뒤처져 있다. 물론 여기엔 장점도 존재한다.

 예술가 들이 창작의 자유를 폭넓게 누릴 수 있고 감시의 눈길이나 생산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하 지만 현지에 구매자가

 거의 없다는 점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치명적인 단점일 수밖에 없다. 문화·예술의 경우 공공 지원뿐 아니라 개인의 참여를 통한 인식과 지원이 필요한 분야다.

 그래야만 모든 창의적인 인재들이 도시의 발전을 위해 다시 한번 기여할 것이다.




8,000명이라는 숫자가 쉽사리 와닿지 않는다. 당신 말대로 베를린은 예술가들로 넘쳐난다.

 전 세계 예 술가가 모여드는 도시로도 유명하다. 예술가들이 베를린을 매력적인 도시로 여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바로 과거와 현재다. 과거는 1920년대 초반의, 자유로운 공간이 넘쳐나던 도시를 의미한다.

 당시 베를린은 유럽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였다. 금지된 일이었음에도 여성이 남성복을 입고 돌아다닐 수 있었고, 동성애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었다.

 많은 예술가가 베를린으로 모여들었다. 러시아혁명 이후엔 러시아인 이 모여들어 도시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기도 했다.

 베를린은 일찍부터 난민을 수용한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 지만 재앙과도 같은 나치스가 등장하면서 도시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완전히

 회복되지 못할 만큼 큰 상처를 입었 다. 유대인 지식인들의 영향력이 강했던 만큼 그들은 도시에서도 결정적 역할을 해왔는데 갑작스레 단절되어버린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었고, 베를린은 섬이 됐다. 청년들에겐 자유의 섬이었다. 서 독의 청년들은 군대에 가야 했지만,

 베를린의 청년들은 그렇지 않았다. 덕분에 많은 수의 젊은이가 베를린으로 거처 를 옮기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가 존재하고,

 히피가 넘쳐나는 무정부적인 도시에 예술가들은 매료됐다. 통일 후엔 도시에 더 많은 공간이 생겨났고, 베를린은 미래와 희망 그리고 통일의 상징이 되며

 더 많은 예술가가 몰려 들었다. 공간은 넘쳐났고, 물가 또한 저렴한 데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기까지 했으니 생활에 필요한 무언가를 힘들 게 찾아내거나,

 멀리 구하러 나갈 필요도 없었다. 필요한 건 무엇이든 바로 곁에서 구할 수 있었다. 베를린엔 늘 활기 가 넘쳤고 우린 그 모든 것을 소중히 여겼다.


 현재는 끔찍하리만치 빠르게 변해가는 베를린의 속도에 두려움을 느낀다. 우린 이러한 변화를 막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충분치 않다. 베를린은 런던이나 파리 같은 대 도시에 비해 아주 저렴한 부동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그 때문에 투자자들은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서서히 진행 되곤 있지만 이미 가격이 많이 올랐다. 베를린의 여러 곳이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하는

 투자자들의 손에 넘 어갔다. 투자를 목적으로 한 이들은 해당 지역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 그들은 공동체의 이익에는 별 관심이 없다.

 지금도 여전히 런던 같은 도시보다 물가가 훨씬 저렴해 많은 예술가가 베를린으로 몰려들고 있지만, 예 전에 비하면 높아진 주거 비용 탓에

 중심가에서 외곽으로 점점 밀려나고 있는 추세다. 




앞서 당신은 예술가들이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광장과 같은 활기를 되찾아야 한다고 답했다.

 파리의  라데팡스 La Défense 프로젝트 등 여러 도시에서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는데,

 예술의 공공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공공 미술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저급 예술 작품이 탄생했다. 하나의 예술 작품이 공공 장소에 자리 잡는다는 건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절대 아무 작품이나 가져다 두어선 안 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작품을 설치하기 전에 지리적·사회적 측면은

 물론 그곳에 누가 살고 있는지, 그 장소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철저 히 분석해야 한다. 오래 두고 보아야 하는 만큼 장기 프로젝트로 다뤄야 한다는 뜻이다.

 마치 자연과도 같이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유기적으로 존재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놀라움과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며 보는 이들과 소통 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




공공 예술에서도 뚜렷한 철학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베를린에서

 공공 예술이 차지하는 중요도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베를린의 공공 미술은 전통적으로 공공 기관이 주도해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2% 원칙을 적용해, 공사비의 1~2%는 건물에 속한

 공공 예술 작품에 사용했다. 하지만 점점 예산 절감 정책에 의해 삭감되는 일이 잦아 졌다. 국회의사당, 정부 부처 건물, 그리고 기타 공공 건물은 훌륭한

 예술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광장이나 공공장소는 그렇지가 않다. 베를린엔 아직 제대로 된 조각 공원이 단 한 곳도 없다. 언제나 그래왔지만,

 예술가들은 생활에 없어선 안 될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예술 속에선 불가능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이야기했듯이 예술은 사 회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지진계다. 아트프로젝트는 수년 전부터 아미르 파탈Amir Fattal, 마르셀 뷜러Marcel Bühler, 마르타 슈바르츠Martha Schwarz,

 비아 레반도프스키Via Lewandowsky, 페터 벨츠Peter Welz 등의 예술가와 협력하고 있으며, 다른 건축 회사들도 이 창의적인 협력 방식에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케이크 위의 과일 장식 처럼 이미 완성된 예술 작품을 공공장소에 갖다 두는 것이 아니라, 처음 계획 단계부터 예술가들을 참여시켰다.

 이것 이 바로 아트프로젝트가 일하는 방식이다. 베를린의 예술가들은 자발적으로 활동하면서 상호 간 협력하며 움직인다. 매우 베를린다운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베를린의 공공장소를 활기차고 국제적인 예술 현장으로 연출해낸다. 최근에 는 최초의 스트리트 아트 뮤지엄인

 어번 네이션Urban Nation이 베를린 쇠네베르크Schöneberg 지역에서 열렸다. 또 반호프 초Bahnhof Zoo역 근처에서 최대 규모의

 야외 아틀리에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덕분에 시민들은 공공장소에서 작품 활동 을 하는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온 그라피티 예술가, 설치 미술가들이 유례없는 공동 작업을 통해 개성 있고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으며,

 거의 매일 밤늦은 시간까 지 다양한 퍼포먼스와 파티가 진행됐다. 이런 풍경은 오로지 베를린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예술가들을 위한 자유로운 공간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만 들어봐도 당신은 다양한 도시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예술가를 만난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베를린 예술가만이 지닌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


베를린에는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모두 모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베를린의 예술가라고 딱 꼬집어 그 특징 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베를린이라는 도시 자체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베를린은 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으로 이루어진 모자이크와도 같다.

 각각의 예술가가 다들 한 부분씩 기여하고 있는 거다. 굳이 꼽아본다면, 베를린 예술가들은 공동체 의식이 민감하게 발달해 있다. 한 예를 들면,

 세계적인 예술가 요나스 부르게르트가 바이 센제에 있는 공장 건물 안에 커다란 아틀리에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는 그 어떤 투자자도,

 미술관도 참여하지 않았다. 오로지 예술가들만이 주인이 되어 예술가를 위한, 예술가에 의한 공간을 완성했다. 그는 2년마다 수많은 예술가가

 참여하는 행사를 개최하는데, 행사 이름인 ‘응고롱고로’는 아프리카에 있는 분화구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 분화구 안에 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신비로운 식물과 동물이 살고 있는데, 마치 이 분화구 같은 존재가 바로 베를린이라는 의미 다. 절대 망가뜨려선 안 되는, 보호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특별한 곳에 존재하는 이들이 바로 베를린 예술가들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다고 이미 이야기했음에도 묻고 싶다.

 베를린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에 딱 적당한 문장이 하나 떠오른다. “베를린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결코 완성되지 않는 다.”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살아오다 17년째 베를린에 머물고 있다. 그 시간 동안 베를린은 한 번도 똑같은 모습이 었던 적이 없다. 늘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점은 내게 매우 중요하다. 베를린에선 무엇이 든 창조해낼 수 있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이곳에선 롤모델 따윈 필요 없다. 누군가를 따라 할 필요도, 모두가 똑같 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 내 다른 도시만 가보아도 베를린과 비교해 훨씬 보수적인 분위기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오로지 베를린에서만 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베를린에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저 나 자신의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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