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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다양성


 

세상에서 무수한 다양성의 존속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를 인정하고 인정받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서로의 다른 부분’을 삭제하는 데 불필요 할 만큼 많은 힘을 쏟는다. 모두에게 똑같은 모양의 주물틀을 만들어주고 그 안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많은이가 최대한 깔끔하고 완벽한 형태의 획일화된 대량생산품이 되기 위해 불필요한 것은 과감히 잘라내거나 잘라낼 수 있는 힘을 과시하며 살아간다. 

 혹자는 자신의 환경을 외국과 비교하곤 한다. “저들은 참 자유로워”, “저들은 우리와 다른 무언가가 있어”, “그래서 저들은 참 멋져”라고 부러워하며 그들처럼 되기를 원한다. 막상 발걸음은 언제나 완벽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주물틀로 향하면서 말이다. 



 

 태어나서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이 틀을 만들어내는 교육, 즉 국가가 이름 붙인 ‘정규교육’이라는 것을 나는 받아본 적이 없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비정상’으로 분류되고, 사회가 획일화된 하나의 형태가 되도록 몰아갈 때, 나는 그 길에서 벗어나 대안학교라는 제도권 밖의 새롭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에 대해 나는 한 번도 뽐낼 만한 자랑거리라고 생각해본 적도, 동시에 주눅 들거나 슬퍼해 본 적도 없다. 다만 ‘틀린 것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공동체안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부대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고 값진 경험으로 남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포틀랜드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포틀랜드어디에 있어야 하는 것일까어디에 있어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경험은 내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현재 내가 하는 모든 창작 활동의 근원이 되었다. 가족과 선생님, 친구들은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존중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두려움 없이 음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자유로운 창작 환경은 음악을 향한 나의 열정에 힘을 실어주었으며,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곡을 만들며 나의 길을 찾아 자신 있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음악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도 나에게 눈치를 주거나 틀렸다, 혹은 잘못되었다고 폄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결정과 선택권은 오로지 나에게 있었다. 하지만 고마운 이들의 전폭적 지지 덕분에 나는 정해진 답 없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일것이다. 나는 한치 앞도 모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떨며 헤매는 대신, 잘 해내리라는 믿음을 갖고 나의 철학과 가치관, 예술적 감성을 불어넣은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 만약 언젠가 내가 정말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은 나의 기량이 아닌, 나를 인정해주고 도움을 주었던 이들 덕분이리라. 


곁에서 지지하고 응원해주는..곁에서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이렇듯 다양성을 인정받고 존중받는 것은 단순히 기분 좋은 것 이상으로 서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나 또한 나와 같은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만이 지닌 고유함을 존중하고 인정함으로써 다양성을 확장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인정받는 날을 위해서. 생각해보면 다양성이라는 단어 속에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다.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부터 다양한 가치관, 다양한 집단까지 광범위하다. 세계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존재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옳고 그름을 하나하나 판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나와 타인의 서로 다른 부분, 즉 다양성을 얼마나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는 자신 또한 누군가를 ‘비정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지극히 평범한 이웃지극히 평범한 이웃

 

 살다 보면 자신의 기준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가치관을 가진 이를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우리가 있지 말아야 할 것은 예의가 아닐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 이들은 남을 인정하기를 싫어하고, 스스로도 그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하는 삶을 산다.

 어쩌면 인간 본연의 다양성을 인정하라고 외치는 것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혹은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주장이 아닐까. 너무 무거운가? 우리 스스로 객체로 존재하는 한, 다양성이라는 단어는 항상 무거운 주제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