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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유가 꽃피운 다양성의 도시

 



 어쩌면 지금 킨포크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온통 흰색으로 꾸민 거실에 앉아, 앞뜰에서 갓 수확한 채소와 열매로 만든 요리와 구수한 향기가 채 가시지 않은 빵을 곁들여 이웃과 함께 브런치를 즐기는 모습. 이것은 수많은 포틀랜드의 단상 중 사소한 일면에 불과할지 모른다. 

 포틀랜드는 미국 내에서 스트립바 수가 가장 많고, 수염과 타투의 비율이 유독 높으며, 인형배에 칼을 찌른 형상의 도넛이 인기 먹거리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백색의 포틀랜드가 있다면 이면엔 어둡고, 짙고, 침침한 포틀랜드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포틀랜드는 인종적 다양성이 가장 적은 곳이기도 하다. 60만 인구 중 72.2%가 백인이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비율은 고작 6.3%에 불과하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엔 경찰의 흑인 총격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기도 한 곳이다. 그러니까 올드한 보수 백인의 네트워크 도시가 바로 포틀랜드인 것이다. 


 포틀랜드 토박이인 에드 워싱턴은 “오리건(포틀랜드가 속한 주)에선 인종에 대해 얘기하는 걸 꺼린다”라고 말한다. 1960년대에 포틀랜드에 나이트클럽을 오픈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폴 널스는 “매일 ‘White Only’ 표지판과 마주해야 했다. 모든 건 카펫 아래 있다”라고 말한다. 인종차별 문제가 있지만 모두가 쉬쉬하는 분위기라는 얘기다. 재즈 클럽에서 폭탄 사건까지 발생하던 시절, 그러니까 아직까지 인종 문제는 포틀랜드에서 터지지 않은 화약고 같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존재하지만 잠자고 있는, 잠자고 있지만 존재하는. ‘킨포크’는 어쩌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포틀랜드를 다녀간지 벌써 3년이 흘렀다. 그간 없던 직항편이 생겨났고, 찾기 힘들었던 가이드북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으며, 잡지들도 포틀랜드를 종종 다루게 되었다. 그만큼 3년 사이 포틀랜드는 우리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다양성의 도시’ 라고 불리는 곳답게 한국, 한국 문화, 한국인도 포섭하고만 것이다.  하지만 인종을 이야기할 때 포틀랜드는 다양성이란 단어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진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많은 사람이 포틀랜드를 다양성의 도시라고 말하는 걸까?

무엇이 포틀랜드를 다양성의 도시로 만드는 걸까? 

60만 인구 중 70%가 넘는 사람이 백인 남성인 곳에서 다양성이란 말은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 


 인종만 놓고보면 포틀랜드는 결코 다양성의 도시가 아니다. 수치가 말해주듯 포틀랜드의 인종차별 역사는 길고도 깊다. 하지만 문화적·사회적 측면에서 이야기할 때 포틀랜드는 다양성으로 점철된 도시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자유롭게 뒤 섞이고, 차별과 금지로 배제하는 것이 전무하며, 히피 문화가 여전히 숨 쉬고 있는 곳이 포틀랜드다. 

 가령 포틀랜드에서 가장 더럽고 촌스러우며 불쾌한 동네 호손은 가장 깨끗하고 우아하며 유쾌한 동네 벨몬트와 고작 세 블록 거리에 있으며, 평범한 옷차림을 한 동네 아줌마의 다리에는 무서운 해골 모양의 타투가 새겨져 있곤 한다. 한마디로 기준이 없다. 정상과 비정상, 이상함과 괴상함을 가르는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무경계의 영역에서 움트고 피어난 도시가 포틀랜드다. 히피 정신이 여전히 윌래밋강을 흐르고 있다. 



포틀랜드_커피포틀랜드_커피포틀랜드_타투포틀랜드_타투





 포틀랜드에 가서 나는 ‘사람들’을 만났다. 결코 ‘한 사람’을 만난 일이 없었다.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찾아가면 거기엔 어김 없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자연스레 그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포토그래퍼 부부인 앤드루와 카리사의 집에 찾아갔을 땐 하루 전날 방문했던 책방 여주인 블레어의 엄마가 와 있었고, 잡지 <킨포크>의 멤버인 네이트 티크너와 연락해 찾아간 사무실에는 <킨포크>의 편집장인 네이선 윌리엄스와 케이티 설 윌리엄스 부부를 비롯해 몇몇의 직원과 그들의 지인이 사무실을 오가고 있었다. 커뮤니티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 곳에 가도, 무엇을 해도 그들은 누군가와 함께였다. <킨포크> 의 멤버로 활동하는 네이트 티크너는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커뮤니티 속에서 우리는 숲속을 걸을 때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서로의 삶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공유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작 며칠 신세 질 참으로 온 여행자인 나에게도 이들은 ‘함께’를 권유했다. 옷을 사러 매장에 들어갔을 때도, 식사를 하러 식당 테이블에 앉았을 때도 단  한 번도 형식적 대화만 오고 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이들은 ‘함께’ 살고 있었고, ‘함께’ 숨 쉬고 있었다. 시니컬한 TV 시리즈 <포틀랜디아>에선 주인공이 들르는 가게마다 “오늘 밤 DJ 하는데 놀러오지 않을래?”라며 제안을 받았다고 하니 그 시니컬하게 유머러스한 일이 내게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단언 할 수 없었다. 포틀랜드는 작은 커뮤니티가 모여 형성된 조금 큰 커뮤니티의 다른 말이다. 






 인종적 편협성면에서도 포틀랜드는 달라지고 있다. 

 퍼핏 (Puppet)이란 소프트웨어 회사는 백인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오리건주 소프트웨어 관련 업계에서 처음으로 여자를 매니저로 승진시켰고, AWS 엘리멘털(AWS Elemental)이란 회사 역시 인종적 균형에 맞춰 매니저를 채용했다. 더불어 인텔사 또한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법조계 역시 마찬가지다. 포틀랜드의 여자 변호사 수는 32.6%로 다른 지역 평균 35%를 밑도는 수준이었는데, 최근 소프트웨어 관련 업계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오리건 주 변호사협회가 2014년 ‘다양성과 포괄’을 모든 프로그램에 적용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US은행의 포틀랜드 지부 자문의원으로 일하는 페니 세루리에의 말에서 근래의 포틀랜드 동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양한 재능을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최고의 사람을 얻지 못한다. 우리 직장이 인종을 뛰어넘어 모두를 환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회사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확실히 포틀랜드의 인종 문제는 카펫 아래 놓여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건 미세한 일부분일 뿐이다. 더불어 미국 내에서 타투 비율이 유독 높은 포틀랜드에선 타투에서의 다양성도 주목할 만하다. 도널드 트럼프 취임 이후 정치적 타투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원더랜드에 살고 있는 앨리스 캐리어는 “우리가 우리 몸에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잘난 체 하는 고집 세고 보수적인 늙은 남자들을 성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아이콘 타투 스튜디오의 공동 설립자 앨리나 천은 “프라이드 주간을 맞아 레인보 깃발 타투가 늘어날 것이다”라고도 말했다. 몸에 대한 자유를 표출하는 것에서 나아가 몸을 통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이다. 포틀랜드는 여전히 다채롭다. 





 포틀랜드에서 기이할정도로 특징적인 건 커뮤니티가 매우 견고하고 다채롭다는 것이다. 오리건 토박이와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뒤섞여 살고 있음에도 이들은 아무런 불협화음 없이 어우러져 하루를 살아간다. 여정 중 만난 <킨포크>의 멤버 네이트 티크너는 “우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모든 이웃은 저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좋은 장소들을 공유하며 먹고, 마시고, 쇼핑하고, 각자의 시간을 즐긴다. 관광객은 종종 우리가 왜 이렇게 우호적일 수 있는지 묻곤 한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할 때, 그리고 행복을 느낄 때 그대로 드러나는 법이다. 포틀랜드의 어디를 가든 당신은 아마 이 느낌을 받을 수 있 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현재의 스스로를 받아들이며 자신이 사랑하는 일들을 한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사랑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지키고 향유하는 것. 포틀랜드의 커뮤니티엔 이 당연하고 자명한 사실이 깊숙이 뿌리박혀 있었다. 개인이 모여 작은 그룹을 만들고, 작은 그룹이 모여 포틀랜드라는 도시를 만들어낸다. 여행하면서 느낀 많은 감정은 모두 사람, 사랑, 그리고 커뮤니티로 응축됐다. 어디를 가도 환대받고, 어디를 가도 마치 이전에 몇 번은 만난 사람처럼 응대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쩌면 포틀랜드에는 사람과 커뮤니티라는 것에 대한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토대가 숨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으로, 성적으로 자유로운 곳. 아니 어떠한 수식도 필요 없다. 자유가 숨쉬는 이곳 포틀랜드는 자유가 사랑을 만나 사람을 품은 도시다. 






 우스갯소리지만 포틀랜드에서 종종 착각을 하곤 했다. 거리의 히피가 거지인지, 거지가 히피인지 구분이 가지 않은 것이다. 가장 깨끗한 동네인 벨몬트가 가장 더러운 동네인 호손과 고작 세 블록 거리에 있는 도시인 만큼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게 거의 불가능했다. 아니, 그런 구분을 거부하는 곳이 포틀랜드다. 다시 말해 인종도, 성별도, 국적도 이곳에선 전혀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인종적으로 다양성이 적다곤 하지만 이들의 사회적·문화적 다양성은 그 정치적 편협성을 넘어섰다. 사적 평등은 공적 평등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공적 평등은 제도를 바꾸거나 시스템을 고치면 어느 정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사적 평등은 사람 개개인의 사고방식, 감정, 감각의 변화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며칠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차이 니스?”, “재퍼니스?”라고 묻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곳에서 중요한 건 그저 정재혁이란 사람, 한 명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때문에 정재혁이라는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또한 그리 중요치 않다. 포틀랜드 사람들은 그 무엇도 개의치 않는다. 자신들의 다양성만큼 타인의 다양성도 존중하며 그 다양성의 품으로 사람들을 끌어안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포틀랜드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벽들을 하나씩 부수는 과정이었고, 그 안에서 진정 나다운 것, 정재혁의 100%, 내가 바라고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쌓아나가는 것 이었다.  


 네이트 티크너는 말한다. “만약 당신이 우리에게 왜 이 도시를 사랑하는지 묻는다면 당신은 매번 다른 답을 들을 것 이다. 동시에 이 도시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묻는다 해도 당신은 다양한 답을 들을 것이다.” 도시의 다양성은 개인의 다양성이 꽃피운다. 개인이 자유롭지 못하면 도시도 자유롭지 못하다. 포틀랜드의 다양성은 개인의 자유가 쌓아올린 작은 성이다. 열흘 안팎의 시간 동안 나는 포틀랜드를 만났고 내 자신과 마주했다. 좀 더 나답게, 좀 더 진솔하게, 좀 더 자유롭게 걷는 걸음 속에 포틀랜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