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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위해




 오리건주 포틀랜드시는 학교에서 인기 많은 무리와 섞이거나, ‘쿨’한 사람이 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아웃사이더 소녀와 닮았다. 

 그녀는 멋진 수입차, 비싼 집 그리고 요즘 잘나가는 클럽에도 조금의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만의 관심사를 찾아 혼자만의 즐거운 세계를 구축한다. 그녀가 관심 있는 것은 환경보호, 도시계획, 또는 교통 정책 같은 정치적 이슈다. 그녀의 또 다른 관심 분야를 살펴보면 흥미와 재미, 예술과 관련한 것들인데, 예를 들면 가까운 산을 등반하거나 동네 강에서 발가벗고 수영을 한다거나, 혹은 독자적인 브루어리를 열어 나만의 맥주를 만드는 것이다.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을 그리거나 친구들과 독립 영화를 촬영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그렇게 혼자만의 세상에서 즐겁게 살던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이 매우 ‘쿨’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 혼자 좋아하던 것, 관심 있던 것, 그녀의 독립적 성향이 대세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인기가 많아진 것이다. 갑자기 그녀는 수많은 친구와 인기를 얻게 된다. 그러나 사실 이 갑작스러운 인기로 그녀의 심경은 복잡하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주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가끔 자신을 좀 가만히 내버려뒀으면, 다시 아무도 나를 몰라줬으면 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포틀랜드가 바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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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년 전 포틀랜드는 지극히 보수적인 생각을 하는 보수 성향의 사람들로 가득한, 무척 따분한 도시였다. 대자연의 아름다움, 눈 쌓인 풍경, 푸르고 무성한 숲, 사막 그리고 아기자기한 해안선에 둘러싸여 있지만 도시 자체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포틀랜드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내가 살던 구시가지의 주민들이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면서다. 포틀랜드 주민은 고속도로를 건설할 예산으로 경철도를 건설하라고 정부를 설득했다. 결국 주민의 바람대로 건설한 경철도는 지난 50년 동안 포틀랜드 규모의 중소 도시에 놓인 첫 철도시설이 되었다. 이후에도 포틀랜드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기업가들이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노력할 때도 포틀랜더들은 반대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직접적 이득없이 단지 국제적 인지도를 얻기 위한 프로젝트에 소중한 세금을 투자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지역 스포츠팀을 포틀랜드에 유치하려던 노력 역시 주민의 반대로 모두 실패했다. 포틀랜더들은 대중적인 미식축 구보다 정통 축구에 관심이 더 많았다. 포틀랜드 농구단이 새로운 경기장을 짓는 데 자금을 지원해주지 않으면 이주하겠다고 시에 입장을 표명했을 때도, 포틀랜드 시장은 한마디뿐이었다. “농구단이 포틀랜드에 남으면 좋겠지만 시에서 경기장을 건설하기 위해 자금을 지불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포틀랜더들은 프로스포츠 경기를 관람하기보다는 직접 경기를 뛰고 싶어 한다. 너도나도 나만의 맥주를 만들던 것이 공동체와 맞물리며 지역 맥주 시음회로 발전하고, 맥주 대회가 되고 페스티벌이 되는 곳이 포틀랜드다. 이러한 그들의 성향은 단순히 브루어리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포틀랜드시에만 70곳, 포틀랜드 지역에는 무려 100곳이 넘는 브루어리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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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오염과 과소비의 상징이 되어버린 자동차를 싫어하는 젊은 포틀랜더들은 대신 자전거를 주요 이동수단으로 선호한다. 오늘날 포틀랜드에서는 같은 규모의 중소도시 중 가장 많은 인구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자전거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포틀랜드에는 자전거관련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이는 자전거 공방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자전거 디자인 산업과 공방 산업은 규모는 작지만 포틀랜드 지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자연스레 자전거는 포틀랜드의 대표 이동 수단이자 맥주 공급 수단이 되었다. 포틀랜드의 얼 블루메나워 하원의원은 미국 의회에서 자전거를 지지하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정치 활동을 하고 있는 워싱턴 D.C.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등 자전거 사용을 지지하고 있다. 자전거는 포틀랜드인의 즐거움과 환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도 볼 수 있다. 톨 바이크(키 큰 자전거)는 지면에서 2m 높이에 안장이 있는 독특한 자전거로, 포틀랜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포틀랜드의 대표 이동 수단 자전거포틀랜드의 대표 이동 수단 자전거포틀랜드 자전거 정비소포틀랜드 자전거 정비소



 꽤 많은 포틀랜드 운전자는 자신의 차 지붕에 톨 바이크 라이더가 발을 올려놓고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모습에 놀라움과 짜증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요즘은 자전거 폴로팀이나 자전거 창 시합도 열린다. 자전거 창 시합은 자전거에 따라 톨 바이크 경기와 소형 자전거 경기로 나뉜다. 포틀랜더들은 연간 국제 행사인 누드 자전거 경주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매해 열리는 이 경주의 경로는 미 리 공유하지 않고 집합 장소에서 공개한다. 그 때문에 집합 장소에 모인 선수들은 자리에서 옷을 벗고 바로 출발한다. 포틀랜드 시민과 여행자들은 대회 기간 동안 야외에서 식사를 하며 1만여 명의 누드 또는 중요한 부위만 가린 사이클리스트들이 경주하는 장관을 즐긴다. 

 최근에 열린 경주를 보던 한 구경꾼은 누드 자전거 경주를 앞두고, “내가 옷을 입고 구경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자신의 옷을 벗어 던지기도 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리고 몇 년 전, 포틀랜드 미술관에서는 자전거를 주제로 전시회가 열렸다. 미적으로 아름답거나, 가치 있는 자전거를 모아놓은 이 이색 전시는 그해 누드 자전거 경주와 일정이 우연히 겹쳐 특별한 축하 연회를 개최했다. 이날 손님들은 자전거를 타고 미술관에 도착해 발가벗은 모습으로 갤러리를 배회하며 자전거 전시를 즐기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도심 속 벽화를 흔히 볼 수 있는 포틀랜드 시내에 길이 40m 규모의 벽화가 있었다. 사람과 동물이 발가벗은 모습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장면이 그려진 이 벽화를 볼 때마다 나는 질문하게 된다. ‘이 동물들은 정말 발가벗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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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연간 이벤트 빅 플로트(Big Float)는 규정 복장이 다름 아닌 수영복이다. 빅 플로트는 포틀랜드시가 윌래밋강의 수질 개선에 성공한 뒤 몇년 전부터 시작한 이벤트다. 여전히 강의 오염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포틀랜드 사람들의 의심을 말끔히 해소하고 다시 깨끗해진 강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몇천 명의 사람이 강에 뛰어들어 튜브나 에어매트리스, 또는 집에서 만든 뗏목을 탄다. 1916년 포틀랜드에서 탄생한 수영복 브랜드 잰츤만 보아도 포틀랜드 의류 디자인사업은 크게 확장되고 있다. 나이키, 아디다스, 컬럼비아 스포츠웨어, 언더아머, 킨 그리고 당연히 나우까지 말이다.




 올해는 운동화 디자이너들이 한데 모여 운동화를 주제로 즐기는 운동화 주간을 기획했다. 운동화 주간에는 운동화를 주제로 한 영화 상영, 운동화 디자이너들과의 대화 그리고 운동화 수집가들의 전시회가 열린다. 몇 년 전에는 대규모 컨벤션을 유치하기 위해 조직 위원들을 포틀랜드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포틀랜드 지역경제에서 의류 디자인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손님들은 저녁 식사와 패션쇼를 함께 즐기게 될 것 이라는 말에 크게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조금만 더 집중해서 들었다면, 그들이 보게 될 것이 패션쇼가 아닌 ‛쓰레기 쇼’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쓰레기, 비닐봉투, 알루 미늄포일로 만든 옷들이 패션쇼 무대에 오를 수 있는 몇 안되 는 곳이 바로 포틀랜드기 때문이다. 나우가 지향하는 지속 가능성과 의류 디자인의 융합은 포틀랜드의 모습이다. 진지함과 산뜻한 창의력의 조합은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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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포틀랜드는 타워크레인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미국 전역은 물론 해외에서 더 많은 사람이 포틀랜드를 찾고 있다. 그들 역시 포틀랜드의 이상하지만 진지하고, 명랑하면서도 창의적인 분위기에 동화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성장과 인기로 포틀랜드 고유의 모습을 점점 더 보기 힘들어지는건 아닐까? 아니면 오히려 새로운 사람들로 인해 이 도시의 아이덴티티가 더욱 두드러지는 건 아닐까? 이 점이 궁금하다면 포틀랜드를 향해 채널 고정!






에세지 저 로버티 리버티

포틀랜드 오리건 주립대의 서스테이너블 매니지먼트 학과장으로, 

지속 가능한 삶과 방향성을 꾸준히 연구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