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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

공동체라는 이름의 정체


혼자가 익숙한 삶


 며칠간, 아니 일주일이 다 되도록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만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만나지 않고도 얼마든지 관계를 맺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했다. 정말이지 너무나 변했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이런 변화는 더욱 가속할 것이다. 이는 여러 가지 사회현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공동체(Community)의 붕괴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통적 가치로 여겼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고로 함께해야 한다”라는 명제 자체도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것은 다시 “인간은 혼자여도 충분히 살 수 있다”로 연결되는 것이기에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동체’란 공통의 생활 공간에서 상호작용하며, 유대감을 공유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같은 ‘지역(Local)’에서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무리를 칭한다. 현대사회는 우리가 기존에 알던 공동체의 형태는 사라지고 상대적으로 다른 형태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가치관의 공유와 맥을 같이한다. 단순히 같은 지역에 살고 있고 같은 학교에 다녀서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바를 공감하고 받아들이는, 가족보다 더욱 친밀한 관계로 맺어진 새로운 의미의 공동체가 속속 등장하는 것이다.                              

                          




포틀랜드를 바라보는 시선


 공동체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로컬 삶을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도시가 있다. 바로 미국 북서부에 위치한 포틀랜드다. 포틀랜드는 <포틀랜디아(Portlandia)>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포틀랜드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익살 넘치는 시트콤이다. 드라마니까 더욱 과장 되기도 했지만, 화면 속 힙스터들은 환경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헌 옷을 수선해 입고, 동물 보호 차원에서 채식주의자가 된다. 엉뚱하고 위트 넘치는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포틀랜드는 드라마가 반영되던 2011년 당시만 해도 기술 발전을 거부하는 1960~1970년대 미국 히피들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한마디로, 과거에 머물러 있는 시골 도시에 가까웠다. 자고로 도시란 ‘현대적 감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믿는 나 같은 사람에게 포틀랜드는 내가 생각한 이상적 도시와는 정반대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포틀랜드가 지금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포틀랜드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도시를, 지역을,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을 뿐. 포틀랜드가 이 같은 관심을 받게 된 데는 포틀랜드에 터를 잡은 브랜드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일단 포틀랜드는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를 설립한 창업주 필 나이트의 고향이자, 본사가 있는 곳이다. 어디 그뿐인가. 파타고니아, 언더아머, 아디다스, 컬럼비아 스포츠웨어 등 800여 개의 세계 유수 스포츠 브랜드가 이 도시에 터를 잡았다. 이들이 포틀랜드에 모여든 것이 단지 나이키라는 상징적 존재 때문은 아니다. 여름에는 도보 여행트레킹, 겨울에는 스키가 가능한 산이 도심 가까이 있으며, 포틀랜드가 속한 정부 주도하에 도로 한복판에 자전거 전용 도로를 만드는 등 도시 자체가 스포츠 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사실 많은 도시가 관료사회인 탓에 도시계획이 시행되지 못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포틀랜드만은 달랐다. 이런 점에 매료된 젊은이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인적 인프라도 풍부해지기 시작했다. 자연환경과 정부의 협조, 그리고 풍족한 인적 자원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 도시를 눈여겨보기 시작한 건 2008년 문을 연 ‘에이스 호텔’이라는 부티크 호텔 때문이다. 기존의 호텔 신 (Scene)과는 다른 격식 없으면서도캐주얼하면서도 자유스러운 분위기, 무엇보다 로비 중앙에 위치한 큰 테이블과 사각 소파에 앉아 각자의 일에 몰두한 사람들의 모습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에이스 호텔은 현지 상표와 로컬 브랜드와의 협업-컬래버레이션-을 끊임없이 시도한다는 것이다. 특히 품질 좋은 스톰프스텀프 타운 커피라는 로컬 로스터리를 호텔 1층에 입점시키면서 지역 커뮤니티를 에이스 호텔 로비로 불러들이는데 기여했다. 커피뿐 아니라 비누, 수건, 가방, 음료 등 호텔에 비치된 거의 모든 물품은 현지 상표, 로컬 브랜드로 채워졌다. ‘상생’과 ‘협업’이라는 미명하에게 일을 의뢰하고 그 대가를 지급하는 일부 기업과는 달리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진정성이 담긴 좋은 사례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세계적 문화 현상이 된 ‘소박한 삶을 추구한다’라는 메시지를 실천하는 <킨포크> 역시 이곳 포틀랜드에서 창간됐다. 2011년 미국 포틀랜드 교외에 사는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예술가들이 만든 작은 모임이자 커뮤니티이던 킨포크는 자신들의 모임을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과정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상업적 의도가 아닌, 각자의 재능을 모아 취향을 공유하던 이들의 사적 만남이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킨포크 특유의 감성이 담긴 콘텐츠로 완성되었다. 나이키, 에이스 호텔, 킨포크라는 전혀 다른 뉘앙스를 가진 브랜드가 ‘포틀랜드’라는 필터를 통해 로컬 비즈 니스의 좋은 예로 꼽히게 된 것이다. 




 사람에,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도시 


 여기까지 보면 여느 도시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포틀랜드가 차별화되는 점은 바로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서다. 유행을 소비하는 대신,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포틀랜드를 이해하려면 그 도시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대형 음반사나 대기업 맥주 회사를 거부하고, 작은 음반 가게나 소규모 브루어리를 애용한다. 커피 체인점보다 스페셜티를 다루는 로스터리를 단골로 두는 것이 익숙하다. 이러한 산업이 선순환되는 구조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같은 형태는 최초의 사회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바로 자급자족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던, 서로에게 필요한 도구와 물품을 교환으로 생활이 이루어지던 바로 그 시절 말이다. 이 도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포틀랜드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자신들의 방식대로 살아왔으며, 자신들의마인드를 이해하는 이들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삶의 방식이야말로 미래 지향적인 이상적 대안이라 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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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