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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지석과 데이즈드가 함께한 진솔한 인터뷰. by NAU

아무 편견 없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NAU의 WE WELCOME 캠페인의 일환인 필름 "What time is it NAU(#상대적충분조건)"이

지난 3월 3일 공개되었다.


한국과 대만을 오가는 3명의 청년들

앨리스로렌스의 브랜드 디렉터이자 모델, 그리고 곧 대만에서 아트북 카페 오픈을 앞둔 Will Lee,

치의학과 대학생, 프로 댄서, 패션모델로서 다양한 일의 경계를 자유로이 오가는 Han Ning,

그리고 이번 캠페인의 앰배서더로 참여한 배우 김지석까지.


도시를 이루는 다양한 사람들과 도시생활방식을 탐구하는 과정 속에서 상대적으로 충분한 행복의 가치를 깨달아가는

여정의 에세이가 데이즈드 3월호에 공개 되었다.


Interview Dazed Korea (인스타그램 @dazedkorea )

Photographer Jinwoo Mok (인스타그램 @lociel )
Film Sunyang Lim (인스타그램 @royalsalute86)








WHAT


배우 김지석은 서울에 산다. 얼마 전 설날을 앞두고는 홍콩에 4박 5일 동안 머물렀다.

그는 침사추이에 있는 한식당에서 잔을 기울이고 고기를 구우면서 앞으로 한 달쯤 쉴 거라고 말했다.




TIME
한편 윌 리라는 청년은 집이 타이베이다. 어쩌다 서울에 와서는 경리단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친구를 여럿 사귀더니

이제는 서울과 타이베이를 오가며 산다. 그는 서울이 매섭게도 춥던 날 창경궁을 잠시 산책했다.




IS IT

지연은 홍콩 반도 동쪽에 사는 홍콩 소녀다. 그런데 한국말을 잘한다. 2008년부터 빅뱅을 좋아하다가 그렇게 됐다.

2층 침대가 있는 지연의 작은 방에는 서울에서 열린 댄스 경연 대회에서 1등을 했을 때 받은 상장이 붙어 있다.



NAU?

아시아의 몇몇 젊은이들과 함께했다.

서로 다른 채, 웃으며 노력하며 지나치며 행복 하고자 각자의 시간을 사는 젊은이들. 그들에게 이런 환영의 인사를 건넨다. 

*나우NAU는 마오리족 폴리네시안 언어로 아무 편견없이 모든 것을 아우른다는 뜻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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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젊은이

서울과 홍콩, 타이베이와 하노이, 교토와 방콕, 평창과 울란바토르….

도시 건너 도시,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정도의 시차들, 겨울과 겨울이 아닌 계절. 며칠 동안 몇 개의 도시에서 몇 명의 아시아 젊은이를 만났다












서울, 2018년 겨울. 이제 아무도 여기서 삼한사온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굴 파고 어디로 쏙 들어갔는 지그 말을 숫제 모르며, 주관식 문제 정답으로 제법 써봤던 이들도 언젠가 그런 말이 있었지 기억에서 꺼내야 한다. 사흘은 춥고 나흘은 따뜻하다니, 일주일을 그리도 알뜰하게 챙길 수 있을까 싶은,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하는 어여쁜 멜로디와 앙상블을 이루던, 솥 위의 눈 묻은 장갑 같고, 난롯가의 말랑한 밀감 같던 말은 여기에 없다. 서울은 변했다. 지금 서울의 겨울에는 매섭고, 지독하고, 얼음으로 뺨을 후려치는 것 같은, 아주 그냥 못된 추위가 있을 뿐이다. 2월 7일도 그런 날이었다. 추위는 옷감이나 살로 오지 않고 뼈로 직접 파고들었다.

 윌 리, 이 페이지에 갑자기 코너를 돌아선 듯 얼굴을 내민 그의 이름이다. 타이베이에 가족과 집이 있는데, 친구들이 있는 서울에도 자주 드나든다. 윌을 만난 건 오후 네 시, 원남사거리 창경궁 담 아래서였다. 그는 거의 부서진 표정이었는데, 가만 보니 이 추위는 그에게 말로 할 수 없는 충격인 듯했다. “타이베이에서 눈을 본 적이 있어요?” 몰라서 묻기도 했지만, 사실 그의 추위를 조금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건넨 말. 그런데 그는 아예 조각난 유리컵 같은 얼굴로 말했다. “타이베이에 눈 온 적 없어요.” 할 일을 빨리 마무리 짓는 것만이 그를 위한 배려임을, 우리는 윌이 담장 을 따라 걷거나 서거나 할 때마다 얼른얼른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배꽃 석 단을 어깨에 걸어주면서는 이런 말을 했다. “배꽃 알아요? 봄에 피는 꽃이에요.” 그가 웃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서울 추위에 길들었다지만, 이쪽도 발이 꽝꽝 얼기는 마찬가지였으니.

 윌과의 촬영을 마치고 스태프와 멸치국수를 한 그릇씩들 먹었다. 아무래도 윌의 입맛을 염려하고 있는데, 국수가 나오기 전부터 그는 이미 빨간 무김치를 먹고 있었다. “익숙해요. 맛있어요.” 몇 해 전, 영 국에서 지내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작정을 하고, 얼마쯤 신나는 경험이 될 곳을 생각하다 무심코 들른 곳이 한국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부산에서 모델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 제안은 윌에게 어떤 기운이 되었고, 곧 서울 경리단길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됐다. 거기서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공부했다. “형이랑 누나들이 잘 챙겨줘요. 동생들도요.” 챙겨준다는 한국말을 딱 그 뉘앙스로 쓰는 대만 사람. 윌은 타이베이에 서 곧 소규모 아트 북 서점을 오픈한다고 했다. 타이베이도 서울도 아닌 새로운 또 다른 도시는 어디일까,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고 덧붙이면서.    


 이틀 후 나는 홍콩으로 갔다. 배우 김지석과의 촬영이 그곳에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첵랍콕 공항 근무자들의 옷차림에서 기온을 감지할 수 있는바, 홍콩은 홍홍홍 제법 따뜻해 보였다. 칭칭 감는 목도리를 조용히 백팩에 접어 넣었다. 그리고 침사추이의 번화한 도로변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을 때, 일행을 반기는 긴 머리 여성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지연이에요.” 이번 일정 동안 우리를 안내할 사람. 그런데 함께 저녁 식사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지연은 홍콩 사람이었다. 자연스러운 한국말 억양과 말투에 전혀 다른 생각을 못 했으니, 홍콩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도 지연은 지연일 뿐, 홍콩 이름이 뭐냐는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빅뱅을 좋아해 한국말을 공부하기 시작한 스물세 살. 빅뱅 멤버 중에서 특히 누구? “탑이요. 멋있잖아요.” 그렇게도 해맑은 표정을 가진 소녀. 뜻밖에도 다음날 우리는 그녀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홍콩의 저 즐비한 아파트. 욕망이니 뭐니 하는 표현을 쓰기 전부터 이미 거기에 있고, 되새길 겨를도 없이 다시 치솟는 에너자이저. 올려다볼수록 기이한 느낌표를 남발하게 되는 압도적인 광경. 지연의 집은 26층이었나, 27층이었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좁은 복도가 있었다. 그리고 문을 열자, 복되도록 작은 집 안이 한눈에 들어왔다. 붉은색 커튼, 황금색 테이블보, 그린 것 같은 사진들, 그리고 지연의 방에는 2014년 서울에 서 열린 한 댄스 경연 대회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한 상장이 걸려 있었다. 그녀는 유튜브 채널을 따로 운영할 만큼 열정적인 댄서였다. 지연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홍콩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가 부족해요. 아직도 옛날 배우들이 최고의 스타예요. 아까 버스 기사님이 계속 알란 탐 듣는 거 보셨죠? 그래서 저랑 친구들은 대만이나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훨씬 좋아해요.” 지연의 집을 나와 홍콩의 서쪽을 향하는 동안에도 아파트의 행렬은 계속되었다. 거의 맹렬하도록. ‘홍콩, 모두가 모든 걸 이뤄낸 도시, 모두가 모두를 이루는 도시. 전부, 모조리, 그냥 다.’ 그런 메모가 생겼다.

이윽고 홍콩에서의 마지막 밤, 배우와의 인터뷰가 끝나고, 고기를 굽던 불판이 식고, 나는 잠깐 걸어보기로 했다. 마치 그것이 시간을 매듭짓는 여행자의 의식이라는 듯이. 그러다 신호등 아래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두두두두 신경을 공격하는 소리를 들었다. 홍콩의 신호등 아래 이 소리가 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닐 텐데 왜 이제야 들리지? 그리고 머릿속에서는 도쿄에서 들었던 신호등 뻐꾸기 소리가 떠올랐다. 물속에서 들리는 것도 같고, 오래된 오르골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한 소리. 두 소리는 섞일 수 없었다. 구룡공원으로 들어서는 계단에 앉아 10분쯤 보내는 동안, 스치는 모든 것들이 일 시 정지처럼 남았다. 왕가위의 유산이란 이런 것인가? 어떤 속도를 내든 결국 나는 나대로의 시간을 보낼 뿐. 누구의 1분도 같을 수 없으니. 마침 한국에서는 올림픽이 열려 1초도 100으로 나눌 기록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는데, 눈이 오지 않으며, 눈을 아예 모르는 홍콩에서 한 여행자는 느리디느린 1분을 보내고 있군. 결코 질리지도 않는 이 이상한 클리셰. 그리고 나는 좀 더 걷다가 어떤 건물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번에도 어떤 소리를 들었는데 분명히 아는 소리였다. 이걸 내가 왜 알지?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와 아프리카 어디쯤, 할랄 푸드와 반짝이는 과자, 홍등과 환전소, 수염과 터번과 웃음, 흰 눈, 무서움, 일부러 이렇게 볼륨을 키운 댄스뮤직. 소리를 헤치고 거리로 나와 그 건물의 이름이 ‘重慶大厦’, 영어로는 ‘Chungking Mansion’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 을 때의 어떤 일시 정지. <중경삼림>, 그것은 젊은이의 영화였던가? 영화의 첫 장면에서 방금 내가 들었던 소리가 내내 나오고 있었던가? 음소거 버튼을 눌렀다 말았다 하는 것 같은 감각인 채, 나는 서울로 돌아가 어서 그 영화를 보고 싶었다.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했을 때, 눈이 오기 시작했다. 과연 동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나라다운 환영 인사군. 오늘 밤엔 무슨 경기가 있지? 그러다 짐을 찾는 벨트에서 예은이를 만났다. 최예은, 15세, 대전광역시 거주, 이 글을 쓰고 있는 장우철의 조카. 엄마와 이모와 함께 3박 4일 교토 여행을 마치고 오사카로부터 비행기를 타고 돌아온 소녀. 그런데 예은은 세상에서 제일 졸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도 자도 졸릴 때지, 먹어도 먹어도 또 먹을 때고. 예뻐라, 그 얼굴에 대고 “어디가 제일 좋았어?”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다만 예은이 속한 공항의 풍경이 불현듯 얼마나 넓은지, 어떻게 충분한지 생각하고자 나는 잠시 서 있었다.









김지석은 삼 형제 중 둘째, 그의 형은 홍콩에 살고 있다. 우리는 갑자기 형님댁을 방문했고, 풍채 좋은 형님과 귀여운 조카를 만났다. 김지석은 홍콩에서 여러 번 형을 만났지만, 이렇게 집에 와보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지석, 가능한 세계 


 한 달쯤 쉴 거라는 김지석에게 두 달인들 어떻겠냐고 했더니, 그가 터질 듯이 웃는다. “이런 반응은 처음 들어요!” 진짜 웃고 있었다. 어땠냐면 그 웃음이 좋았다. 가만 보면 웃을 때 그냥 웃는 사람이 있고, 늘 웃음의 뒷마당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후자는 어쨌거나 언젠가는 힘이 들고 말았으니, 경험으로부터 배운바 지금 그냥 웃고 있는 김지석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건강한 사람이다. 질문은 다른 곳에서 시작했다. 삼 형제 중 둘째, 그에게 섬세함이 있다면 무엇일까, 아주 가느다란 선으로만 닿을 수 있는 포커스가 있다면 어디를 조준하고 있을까. 그래서 거꾸로 묻기 시작했다.

 

남자들 많은 자리가 편하죠? 이렇게 모여서들 형, 동생 하면서요. 하석진 씨랑 친해 보이던데요. 

 네, 데뷔를 비슷하게 했고요. 처음엔 석진 씨 석진 씨 하다가 <문제적 남자> 하면서 친해졌어요. 상남자죠, 석진이는. 남자다움, 어떤 무뚝뚝함에서 오는 따뜻함, 좀 척하는 것도 있고요.(웃음) 막 허세가 아니라 귀여운 척이 랄까, 되게 귀여워요 그게. 저는 달라요. 보면 달라요.

그러게요. 지금 들으면서 다르구나, 왠지 느꼈어요. 배우로서는 누구와 어떻게 다른가요? 

글쎄요, 뭔가 배우이기 전에 인간 김보석(김지석의 본명)으로서 내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요즘 에너지가 소진됐다는 건 맞아요. 좀 소진됐죠. 천생 배우는 아닌가 봐요. 제가 오롯이 서야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데, 요즘은 저 자신을 더 아껴주고 싶은 시기예요. 여기로 오기 전에 주셨던 편지에 ‘여행은 납작해진 나를 부풀리는 것’이라는 말을 쓰셨잖아요. 되게 공감했어요. 납작해진 것도 맞는데, 저는 좀 헝클어진 것 같아요. 막 총 채로 먼지를 털면 헝클어지잖아요. 다듬는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요. 이렇게 여행 와서, 여행 겸 촬영 겸 와서. 저는 홍콩에 하루 더 있다 가기로 했어요. 매니저도 없이 돌아다니면서, 아까 우리 촬영한 것처럼요. 걷다 보면 안 보이던 게 보이고, 보통 때 안 나던 생각이 나고, 그런 거요. 

잠은 아무 데서나 잘 자나요?

잘 자요. 한국을 나오면 더 잘 자요. 서울에서 무슨 파라노이드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닌데, 나오면 뭔가 트인다고 할까? 그런 게 있죠. 근데, 또 간사한 게…. 아니에요 저는 생각이 왔다 갔다 해요. 스스로에게 ‘너 진짜 욕심 많고 간사하다’ 그래요. 

자연스러운 일이죠. 생각은 혼자 하는 거니까요. 

음, 이런 생각도 들어요. 돌아갈 데가 없으면 여행의 의미가 없다. 집이 있어야만, 돌아갈 곳이 있어야만 여행이 성립한다고 봐요. 안 그러면 집시잖아요. 집시의 삶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돌아갈 곳을 생각하는 게 여행의 가장 큰 의미? 힘? 그냥은 못 돌아다니겠어요. 류승범 형을 보면 대단하죠. 진짜 멋있어요. 제가 못 하는 일이라 그런지 더 멋있어요. 완전히 방랑자처럼 살잖아요. 그러다 영화를 하기도 하고요. 

어쩌다 홍콩에 같이 왔네요. 예전엔 미처 몰랐는데.

네, 일종의 테라피예요, 테라피. 이렇게 얘기하면서 깨닫는 게 많더라고요. 상대적이긴 하죠. 제가 해야 할 말만 형식적으로 하면 거기서 끝나는데, 전해주신 몇 가지 질문이 담긴 편지를 읽으면서 저는 저대로 뭔가 마음이 생겼어요. 대답을 미리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편하게 하자, 그런 거요. 내가 뭘 얘기해도 알아서 걸러주시겠고, 뭘 틀리게 얘기해도 커버해주시겠고….

노.(웃음) 그냥 그대로 쓸 건데요?

하하, 그러니까요. 뭐랄까, 좀 아껴놓았어요. 제 스타일이기도 해요. 일하기 전에 약간 긴장감을 갖는 게 좋아요. 너무 친하게 느슨해져 버리면 편하기는 해도 뭔가 좀 풀어지죠.

(고기와 된장찌개를 같이 드시겠느냐는 직원의 질문에 고추장찌개는 없는지 그가 되묻는다. 그 집에는 고추장찌개가 없었고, 그는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해외에서 꼭 한식을 찾는 사람이 있는데, 김지석 씨가 그런 사람이군요.

네, 제가 진짜 촌스러워서 해외만 나오면 이렇게 꼭 한식을 먹어요. 하필 사춘기 때 외국에서 기숙사 생활해서 그런지 양식에 무슨 트라우마가 생긴 것도 같아요. 중학교랑 고등학교 때 영국에 있었어요. 그때 감자로 할 수 있는 모든 음식을 먹은 거 같아요. 지금도 감자는 좀…. 

아까 서쪽에 있는 형님댁에 갔었죠. 형님을 뵈니까, 지석 씨가 둘째라는 걸 좀 더 느끼게 됐어요.

형이요? 형은 완전 A형에 장남이에요. 저는 진짜 전형적인 둘째고요. 둘째는 뭐, 눈치죠 눈치. 삼 형제가 부모님께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는데도 괜히 눈치가 있어요. 이제까지 인터뷰할 때는 형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연기를 시작했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인터뷰용으로 오버해 말한 거였어요. (웃음) 확실히 뭔가 인정받고 싶었나 봐요. 근데 또 사람이라는 게 간사한지라, 참 간사해요. 매번 바뀌어요. 매번 바뀌는데, 감사한 것도 있어요. 점점 필요한 게 없어져요. 물리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가족이나 친구들이 생일날 뭐할 거야? 필요한 거 없어? 그러면 필요한 게 정말 없어요. 다 가져서가 아니라 그냥 만족해요. 이렇게 운동복 한 벌 가지고 홍콩에 와요. 사람도 그래요. 좀 슬픈 일인가? 예전만큼 친구가 필요하지 않다고 느껴요. 20대 때는 의리가 모든 걸 해줄 수 있을 것 같고, 채워줄 것 같고,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위 사람이 그렇게 다 있어야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슬픈데 적응이 돼요.

그래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라는 거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똑같은 거 같아요. 연기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 최근에는 뭔가 그런 맛을 보기도 했으니까요.

<2017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죠.

이건 정말 솔직한 얘긴데, 상 받으러 올라갔을 때 너무 좋았어요. 모두 저를 보고 있고,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고, 이 순간만큼은 제 시간이잖아요. 좋았죠. 그 시간을 제가 만들었다는 것이 와! 좋았어요. 하지만 내가 연기로 인정을 받았어! 이런 생각까진 못했어요. 왜냐면 그 이면에는 제가 나름 힘들었던 시간이 겹치니까요. 이렇게 보상을 받는구나, 그런 느낌이 들긴 했어요. 뭐랄까, 솔직히 조금 서글프기도 했어요. “야, 상을 받았는데 왜 그냥 기뻐하지를 못해.” 주위에서들 그랬어요. 물론 저도 기뻤는데, 이상한 기분도 들더라고요. 참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신기하게. 



알 것 같은 얘기네요. 전혀 모르는 거겠지만요.

만족하지 못했다기보다 음, 나름 많이 힘들었나 봐요어제 스태프들이 한국 선수가 지금 평창에서 금메달 땄다고 그러는데, 그 선수도 백 퍼센트 막 좋기만 할 까? 좀 허무한 것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삶이 무슨 예능 프로그램도 아니고, 스스로 무슨 일관된 캐릭터를 설정하겠어요.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죠.

뭔가 발전적이고 진취적인 이야길 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제가 지금 뭔가 내려놓은 상태예요. 너무 헉헉 달려온 것 같으니까요. 혹자는 이래요. 에이, 열정이 없어졌 네. 너 방전됐구나. 뭐 그럴 수도 있는데 스스로는 알잖아요. 다음을 찾고 있어요.

스스로 아는 김지석은 어떤 사람인가요?

어떻게 보면 보수적이고 틀에 박힌 사람 같아요. 용기가 없는. 그래도 최근에 하나 용기를 내서 바꾼 게 있 어요. 저는 비혼주의자가 됐어요. 하도 결혼 결혼 하니까요. 부모님이 그러시는 마음은 알겠어요. 근데 왜 기자분 들이 내 결혼을 묻지? 궁금할 수는 있지만, 배우의 삶에 결혼이 그렇게 매일같이 질문할 정도로 중요한가? 그냥 저는 제 삶이, 제 행복이 더 중요해졌어요. 저 지금 완전 프리한 거예요. 하하, 모르겠어요. 방송에서 보이는 이미지도 제가 맞긴 맞아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고 밝고 긍정적이고.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에요. 대중이 생각하는 이미지에 완전히 부합하는 사람은 아닐 거예요.

<20세기 소년소녀>를 드문드문, 지석 씨 나오는 장면을 골라가며 봤어요. 그 드라마도 마침 여기 홍콩에서 시작하죠. 보다가 밑도 끝도 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사람은 사람을 보는 눈을 갖고 있구나, 사람이 사람을 보는 눈을 다정하게 배웠구나.

글쎄요, 지금 이렇게 대화하는 것도 그렇고, 툭툭 털듯이 얘기할 수 있는 건 진심을 느꼈기 때문일 거예요. 상대적이지만, 내가 진심이라고 느끼면 나도 진심을 내놓게 되는 거죠. 연기도 늘 진심이어야겠죠. 실제 인간관계든 연기든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설사 안 통하더라도 진심으로 대하는 제 마음이 그냥 좋아요.

진심은 언제나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말이지요. 근데 저는 배우가 장악력을 갖는 것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요. 숫제 좋은 배우의 기준으로 삼기도 해요. 연기를 잘하느냐보다, 지금 이 장면을 끌고 갈 수 있느냐, 계속 쳐다보게 만들 거냐, 그런 힘의 문제.

근데 어렵다. 그 힘이 뭘까요? 결국 비주얼 아니에요? 하하, 계속 알고 싶고, 생각하고 싶은 얘기네요.

김지석이라는 배우가 상대를 대하는 눈과 표정에도 뭔가 그런 게 있죠.

음, 제가 옛날부터 하나 잘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건, 20대 때 막 신비주의 같은 말이 한창 유행할 때였는 데, 그때 저는 저를 알았고 인정했다는 거예요. 아, 나는 신비주의 안돼. 나는 친근하게 그냥 옆집 오빠 같고, 내일부터 남자친구 하자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 어울려. 방향을 잘 잡은 거 같아요. 다행이죠. 자각하고 인정 했으니까요.

어떤 결핍 없이, 듬뿍 사랑받고 자란 사람들의 얘기.

네, 어떤 건강함에서 비롯된 걸 수도 있겠죠, 결과 적으로는. 근데 저는 요즘 좀 슬픈 단계인 것 같아요. 예전에 홍콩에 오면, 쇼핑하러 다니고 펍 같은데 가서 친구도 사귀고 막 빨빨대고 돌아다녔는데, 지금은 옷 하나 가지고 덜렁. 뭐가 없어요. 되게 심심한거죠. 근데 괜찮아요 그게. 이런 제가 싫어요. 내가 이렇게 됐어? 뭔가 인정하는 단계고, 갈수록 그래요. 이게 열정의 문제인지 나이를 먹은 건지, 그냥 심심한 건지, 꼰대가 된건지, 성숙해진건지 모르겠어요.

 어떤 콘셉트나 의지보다는 자연스레 몸을 따라가는 때가 와서 그럴 거예요. 몸은 정직하니까. 앉아 있게 하고, 눕게 하고. 그럴수록 경계해야겠지만요.

경계를 해야 할까요?

안 그러면 나도 지하철 빈자리에 가방 던지면서 거기 내 자리! 하는 사람이 될지도 몰라요. 몸이 원할 테니까요.

하하, 맞아요. 이런 얘기가 좋아요. 아까는 형이랑 말하면서, 형이 이렇게 홍콩에 사니까, 떨어져 있으니까 좋다는 얘기를 했어요. 뭐냐면 만날때 마다 바뀌어 있는 거예요. 조금씩. 사람은 같지만 과정, 상황, 위치, 고민거리, 나이 이런게 바뀌니까 그만큼 얻는 것도 많아요. 가족이라는 어떤 암묵적인 신뢰도 있잖아요.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형이 이해하든 못하든 그냥 편한 거예요. 다 얘기하는 거죠. 그 와중에 더 알아주고 더 이해해주고.

마침 설날이 내일모레네요.

네, 저희 외할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셨거든요. 명절 때 서울에서 한 서너 시간 차를 타고 가면 논두렁이 있는 외갓집에 도착했어요. 거기가 집도 아닌데 참 편안했어요. 지금 여기 홍콩도 그런 기분이 들어요. 거리는 번잡하고, 사람도 많고, 주로 일하러 오지만 가족이 여기에 살고 있다는 믿는 구석? 편안함? 그런 게 있어요. 되게 재미있는 감정인 것 같아요.

돌아갈 집이 있어야 여행이 성립한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볼게요.

저는 계속 전셋집에 살아서 거의 2년마다 이사를 다녔어요. 집에 대한 어떤 욕심이 없고, 부동산도 잘 몰라 요. 역마살도 좀 있어서 옮겨 다니는 걸 좋아하고요. 집이 집다운 느낌을 잘 몰라요. 그래서 뭔가 가족들이 모였을 때 좀 겉도는 기분도 드나봐요.

가족이 아니더라도, 집에 혼자 앉아서 창문으로 들어 오는 빛을 보는 시간 같은 거 없어요?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없나 봐요. 소파에 이렇게 한참 동안 앉아 있어야 그걸 알게 되겠죠?

힘이 덜 빠져서 그래요. 더 빠져야 되겠어요.(웃음)

하하하, 진짜? 아, 별로예요. 진짜 그렇게 더 빠져야 해요? 요즘 개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저는 애완동물에 관심이 1도 없었거든요. 근데 얼마 전에 아는 동생이 미국 간다고 2주 동안 개를 맡아달라고 해서 맡아줬는데, 그때 알겠더라고요. 얘가 기다리는 집으로 가고 싶은 거예요. 지난 9월에 이사한 집이라 아직 낯익지도 않은 집에서 대개 혼자 술을 마셨거든요. 그 공기의 적막함을 깨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개가 날 반겨주더라고요. 그 동생한테 전했어요. 야, 너 미국 갈 때마다 나한테 맡겨, 내가 봐줄게. 이렇게 간사하다니까요. 요즘 그 끝을 느끼고 있는 거 같아요. 이게 외로움인가? 이게 나이를 먹는 건가? 그렇게 치부하려고 했는데 아닌 것 같아요. 피하려 하고 취하려 하는 거예요. 외로우니까 피하고, 피하니까 다른 걸 취하려 하고….

공부를 해야 해요. 이건 저에게도 하는 말입니다만.

아까 형도 똑같은 얘기를 했어요. “다음으로 가려면 공부해야 해.” 같은 얘기를 하시네요.

뭔가를 달성하고, 성취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그런 것과 자신은 좀 떨어져 있다고 느끼나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뭔가 가지면 욕심부리는 거 같았어요. 형은 완전 반대. 당연히 가져야 하는 거? 저는 연기에 있어서도 좀 그래요. 뭔가 야망을 가지거나 욕심을 부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괜찮아, 언젠가는 주인공도 하겠지, 20대 내내 그랬어요. 근데 서른 넘고 나서 뭔가 열이 받는 거예요. 아니, 나도 해볼래! 맨날 하던 거 말고 다른 거 해볼래. 그래서 하게 된 게 <역적>의 연산군이었어요. 제발 시켜달라고 했어요. 완전히 바뀐 거죠. 그걸 하고 나서 용기가 생기고 건강해졌어요. 예전에는 막 있어도 없는 척, 없어도 있는 척 휘둘렸거든요.

저는 어떠냐면, 잘난 척은 괜찮아요.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적어도 그걸 지향하는 거니까. 근데 못난 척은 사양해요. 무슨 강강수월래 하듯이 너나 나나 똑같이 못났으니 술이나 먹자, 하는 식은 절대 사절이에요.

하하하, 제가 옛날에 그랬다니까요. 맞아요. 완전 알아요. 그래서 제가 혼자 있을 때 욕을 그렇게 많이 했나 봐요. 저 욕 진짜 잘해요. 찰지게. 

<혼자서도 잘해요>라는 유아 프로그램이 있었죠. 어른은 아이들보다 더 잘해야죠.

하하, 오늘 재미있어요. 제가 확실히 요즘 뭔가 외로운 건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막 웃는 걸 보면요. 연기는 아닌 것 같고 이미지 메이킹도 아닌 것 같고요. 저는 그냥 제가 발전하길 바라요. 잘 갔으면 좋겠어요. 대중의 기대도 있고, 바라는 이미지도 있겠지만, 거기에 부합하든 안 하든 제가 늘 건강하길 바라요.

쉬어야 할 땐 쉬어야죠.

그러려고요. 사실 이 촬영을 끝으로 당분간 스케줄이 없어요. 다 놓고 싶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3월 중순인가, 어쨌든 앞으로 한 달 정도는 저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어요.

두 달도 괜찮지 않을까요?

하하하, 두 달도 괜찮대. 이런 반응은 진짜 처음 들 어봐요. 사무실에서는 쉬는 동안 보라며 대본을 보내려고 하거든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쫓기지 않아도 된다는 거잖아요. 예전에 선배들이 한 캐릭터 끝나면 “A를 놓기가 너무 힘들어요 돌아가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러던게 이해가 돼요. 각자 스타일이 있겠지만 저는 좀 원래의 저로 돌아가서 납작해진 저를 부풀려주고 이렇게 쓰다듬어준 후에 연기를 하고 싶어요. 기름칠도 하고요.

그러고 나면 어디로 돌아가 있을까요?

저는 제가 늘 소년이길 바라요. 꿈이 뭐예요? 물어 보면 소년이길 바란다고 말해요. 몸은 아닐지언정 생각이라도요. 제가 지금 소년이었다면 아까 만난 조카처럼 이거 가질래, 와플 먹을래, 그건 안 할래, 제 감정에 충실했겠죠. 그런 채 연기에 몰입하길 바라요. 소년처럼 순수하게 하길 바라는 거죠. 자꾸 생각이 끼어들면 괜히 어려워지고 헛소리하고 그러잖아요. 소년다운게 무엇인지. 내가 소년이었을 때 어땠는지 항상 생각해요. 그래서 출발점은 항상 소년이에요. 그런 태도로 돈도 벌고, 욕심도 내는거죠. 안 그러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믿죠?

저는 믿느냐보다 인정하느냐인 것 같아요. 믿는 거는 조금 더 어려운 문제 같거든요. 그냥 저를 인정하는 거예요. 내 위치와 감정과 생각을 부정하지 않고, 내가 이 렇구나 인정하는 거. 다행이죠. 그걸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저도 그냥 몰랐으면 좋겠을 때도 있어요. 내가 무슨 히스 레저처럼, 연기만을 위해서 막 불도저처럼 죽을 수 있을 만큼 할 수 있느냐, 못하겠다는 거죠. 부러워요. 물론 상대적인 거겠죠. 간사해요. 근데 사실 스스로 간사하다고 생각 안해도 되잖아요? 저 AB형이에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