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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건물과 새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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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의 거리는 아무리 거닐어도 지루하지 않다. 

옛것과 새것이 적절히 섞여 있는 오묘한 풍경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다 보면 

어느새 타이베이만의 정취에 흠뻑 취하게 된다. 

오래된 건물과 새로운 삶을 뜻하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 ‘노우신생’의 실체는 타이베이라는 도시 그 자체였다.







오랜 역사와 추억이 담긴 공간이 허무하게 사라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가슴속 어딘가 쓸쓸함을 불러일으킨다. 

어디를 가든 재개발 물결이 몰아치는 한국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의 저자 

제인 제이콥스는 “철거와 재건축 은 약탈이며 도시의 활기를 파괴한다”고 말한 바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오로지 새로운 것만이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봐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을 한발 앞서 시작한 도시 타이베이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타이베이는 크게 동쪽과 서쪽으로 나눌 수 있다. 

동쪽은 타이베이를 상징하는 건물이 된 101빌딩, 대형 백화점 등의 상권 이 형성된 신시가지, 

서쪽은 시먼딩과 디화제迪化街 등이 있는 구시 가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오래된 건물들은 주로 구시가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물론 타이베이에선 신시가지, 구시가지 할 것 없이 도시의 모든 곳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오래된 건물을 만날 수 있다. 

타이베이의 오래된 건물들은 세월의 흐름을 잔뜩 머금은 만큼 낡고 노후했지만, 

허름하거나 지저분하다는 느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칠이 다 벗겨져 삐걱대는 나무 창틀도, 오랜 세월 바람에 맞서다 부서져 내린 돌기둥도 애정을 갖고 

재정비하며 사용과 동시에 보존을 위해 노력하는 타이베이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다. 

언뜻 다른 시공간을 건너온 것처럼 이질적인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담배꽁초 하나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잘 정돈된 건물 주변과 깨끗한 거리는 

오래된 건물에 묘한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물론 타이베이 사람들의 시민 의식만으로 오래된 건물들이 오늘날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타이베이가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타이베이시 정부의 오랜 노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근대와 현대가 가장 매력적으로 조화를 이룬 지역인 디화제를 예로 들어보자. 







타이베이 정부는 도시 재생의 거점 역할을 하는 프로젝트 ‘도시 재생 전진기지Urban Regeneration Stations(URS)’를 통해 

오래된 건물의 외관은 그대로 보존한 채 내부 리모델링만을 거쳐 기존의 전통 시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이고 개성 있는 라이프스타일 숍과 카페, 신진 작가들의 작업실 등이 하나둘 모여들게 했다. 

오래된 건어물 상점, 차 상회같이 디화제의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는 상점들과 현대적 라이프스타일 숍, 카페 등이 

한자리에 모여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은 오늘날 대만 현지인은 물론 전 세계인이 디화제 를 찾게 하는 강점이 되고 있다. 


‘당신의 것’이라는 뜻을 지닌 영어 ‘Yours’와 발음이 비슷한 URS는 

도시와 마을이 우리 모두의 것임을 도시민에게 알리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타이베이시 정부에서 건물을 매입한 뒤 이를 민간 단체에 맡겨 도시 재생 활동가 및 주민들로 구성된 관련 전문가들이 운영을 맡는다. 

문화·예술 활 동을 비롯한 갤러리, 공정무역 상점 유치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 결과 디화제의 여러 장소는 

타이베이시 정부 문화국이 2001년부터 추진해 온 도시 재생 프로젝트인 

‘老屋新生노우신생: 타이베이 올드 하우스 문화 운동Taipei Old House Cultural Movement’에 대거 선정되기도 했다. 



타이베이 올드 하우스 문화 운동은 ‘오래된 건물은 도시 문화의 가장 중요한 스토리텔러이자, 

도시의 기억을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는 기호’.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도시 재생 운동의 일환으로, 

타이베이시 문화국이 지정하고 보존하는 오래된 건물의 보존과 재사용을 활성화해 문화 자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시작됐다. 

오래된 건물에 대한 공개 입찰 과정을 통해 기업, 학교, 비영리 법인과 개인 등을 선정, 정해진 사용 기한 동안 오래된 건물을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문화 자산 보존법을 토대로 건물 보존을 위해 사용한 유지 보수 금액 등은

정기 심사를 통해 사용료에서 감면받을 수 있다. 오래된 건물의 사용권을 민간에게 일정 기간 제공함으로써 

자칫 방치되기 쉬운 공간을 자연스럽게 유지·보수하고 이와 동시에 시민을 위한 문화 공간까지 창출 해낼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인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이러한 뜻깊은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민간 기업은 기꺼이 자신들의 노력과 수고를 자처하면서도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타이베이 사람들의 오래된 건물에 대한 애정과 시민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태평양전쟁 당시부터 1979년까지 주타이완 미국 영사관이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타이베이 필름 하우스’는 

타이베이시 정부 문화국이 타이완 영화 문화 협회에 건물 운영권을 위탁해 운영되고 있으며, 

1930년대 일본식 가옥을 복원해 공공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문방챕터文房Chapter’ 역시 

2013년, 앞서 말한 올드 하우스 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민간 기업과 협력을 통해 재건 및 운영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타이베이시가 문화기금회를 통해 운영하는 송산문창원구와 보장암 국제 예술촌 등도 

타이베이시의 오래된 건물을 이용한 문화 육성 정책의 훌륭한 결과 물이다. 

타이베이시 문화기금회는 일본의 식민 지배 영향으로 대만에 남은 군수 산업의 잔재인 담배 공장과 양조 공장 등의 활용을 고민하던 

타이베이시 정부의 고민 끝에  탄생했는데, 오늘날 도심 내 문화 시설의 조성과 운영 등 다양한 문화 산업을 진행하고 있다. 







풍부한 문화적 자원을 갖고 있다 한들 그것을 지켜낼 수 있는 인적 자원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속 가능한 도시 또한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면에서 타이베이는 문화적 자원과 이를 지켜낼 수 있는 의식을 지닌 인적 자원 

그리고 정부의 정책이 모두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찰스 랜 드리Charles Landry는 저서 <The Creative City: A toolkit for Urban Innovators>를 통해 창조적 도시를 구현하는 공식을 제안했는데, 

창조적 도시는 ‘도시 발전×문화적 정책+창의성’의 공식이 성립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고 말했다. 

도시는 문화적 자원이나 창의성만으로는 지속할 수 없다. 

정부의 정책과 지원이 존재함과 동시에 이를 뒷받침해줄 시민 의식이 함께했을 때 

비로소 창조적 도시, 지속 가능한 도시가 완성되는 것이다. 



오래된 건물은 도시에 활력과 다양성을 불어넣는다. 

새로운 건물은 언제든 다시 지을 수 있지만 오래된 건물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단시간에 만들어 낼 수 없다. 

오래된 건물의 가치는 시간만 이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는 일은 어쩌면 계속해서 존재할 수도 있었던 다양성을 철거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신축 건물만 자리 잡은 지역엔 다양성이 존재하기 어렵다. 

높은 신축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책정된 고가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건 대기업이 운영하는 획일화 된 대형 상점 뿐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내기 어려운 소규모 상점과 개인들은 갈 곳을 잃게 될 수도 있다. 

타이베이의 도시 곳곳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오래된 건물들은 다양한 취향을 지닌 여러 세대의 사람들을 모이게 했고, 

덕분에 지역 상권은 더욱 다양해 지며 활기를 띠게 됐다. 

타이베이의 오래된 건물들은 신축 건물의 높은 임대료의 벽에 부딪힌 

젊은 세대들의 새로운 도전을 위한 돌파구가 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오래된 것의 가치를 존중하고 삶 속에 그대로 받아 들인 채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타이베이의 현재를 좀 더 들여다 보고자 한다. 


옛 양조장과 담배 공장을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와 ‘송산문창원구’, 

1928년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국립 타이완대학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선정된 ‘베이터우 도서관’, 앞서 언급한 ‘타이베이 필름 하우스’, 

타이베이의 옛 모습이 잘 보존된 지역 중 하나인 ‘보피랴오 역사거리’ 

그리고 디화제의 모퉁이 한편을 오랜 세월 지키고 있는 대만 최초의 ‘왓슨스’ 건물까지.


나우매거진에서는 미처 몰랐 던 타이베이만의 매력으로 가득한 7곳의 공간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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