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博愛 | 그것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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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지하철엔 특별한 좌석이 있다. ‘박애석博愛席’. 

파랗게 칠해진 이 좌석은 혼잡한 출퇴근 시간대에도 거의 비어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교통약자 배려석이나 임산부 배려석 같은 개념인데,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표기되어 있는 박애석이라는 세 글자가 

유난히도 오랫동안 마음 한편에 남는다. 






대만의 성 소수자 단체 ‘퉁즈同志’의 정책실장 두쓰청杜思誠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만에서 동성 결혼은 평등과 인권의 문제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박애’,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사랑하는 것. 

타이베이의 사랑은 편견과 차별 없이 이 도시를 살아가는 모두를 향해 있다. 






2017년 5월, 타이베이시에 위치한 대만 최고법원인 사법원이

'동성끼리의 결혼을 제한해온 형행 민법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성적 지향은 바꾸기 어려운 개인의 특성'이며, '결혼이 제공하는 친밀하고 배타적 성격의

영속적 결합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모두에게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설명이 포함된 판결문에는

오랜 시간 평등한 사랑을 위해 싸워온 모든 이의 노력이 스며있다.


'결혼 평등 Marriage Equality 법안',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와 마찬가지로 결혼이라는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된 판결이 있기까지

타이베이에선 행진과 집회가 수없이 많이 열렸다. 성수자는 물론 일반 시민까지 모두 거리로 나와 법안을 통과시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2016년엔 타이베이의 카이다거란 거리에서 열린 결혼 평등 법안 합법화를 위한 콘서트에 25만명의 시민이 함께하기도 했다. 

2014년 법무부가 실시한 조사에선 대만 국민의 50% 이상이 동성 결혼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젊은 층에선 무려 80%가 넘는 비율이 찬성표를 던졌는데,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데엔 성 평등 교육도 한몫을 했다.

(대만에선 2004년 성 평등 교육 법안이 도입된 이후부터 중고등학교에서 성 평등과 성 소수자 인권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더 많은 이성애자가 기꺼이 성 소수자 편에 섰다. 

이들에게 동성 결혼 지지는 모두가 평등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성 소수자를 향한 박애의 목소리였다. 

'내가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를 왜 다른 누군가는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단순한 의문에서 박애의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박애의 손길은 비단 성 소수자에게만 향해 있지 않다. 

타이베이시의 마을 만들기 센터는 도시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각 지역의 마을을 재생하고 문화 예술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노숙자 자활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기도 한다. 

마을을 안내하는 관광 가이드로 채용하거나, 목공 같은 기술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자립을 돕는다. 

시민들은 센터를 통해 따뜻한 격려를 보내고 이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타이베이에서의 기억을 한가지 더 되짚어보면 어딜 가더라도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완벽하게 마련돼있었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건물의 계단에 휠체어를 위한 완만한 경사로가 설치돼 있고, 시내버스에 설치된 휠체어용 리프트는 수시로 작동됐다.

머물렀던 호텔의 입구엔 장애인이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든 프런트 데스크와 연결할 수 있도록 

휠체어 높이에 맞춘 낮은 위치에 호출 벨이 설치돼 있었다.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라 할지라도 나름의 방식으로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박애는 그저 상대를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감정과는 다르다.

상대가 나보다 약자라서가 아니라, 나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느끼게 되는 감정이 바로 박애다.

스피노자는 저서 <에티카>에서 "박애는 나보다 힘겨운 이들을 친절히 대하고자 하는 욕망"이라 말했다.

그 욕망은 상대를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여길 때 비로소 생겨난다고도 했다. 박애는 공감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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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출처 : 나우 매거진 no.2 Taipei(타이베이)

*Column '博愛 | 그것이 사랑' (writer : 장세현 / photographer : 목진우)